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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도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화랑도의 활동이 가장 왕성했던 중고시대 즉, 통일이전의 화랑과 통일이후의 화랑의 성격을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적절한 방법일 것이다.
그 이유는 화랑의 활동과 그 정치-사회적 기능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변천해 갔을 것이며 특히 신라 하대로 내려오면서 화랑도는 진골귀족들의 사병적-문객적 성격을 띠는 조직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중고시대의 일반적 시대상을 개관해 보면, 대외적인 면에서 이 시대는 신라가 급격한 영토 확장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백제-고구려 양국으로부터 양면 공격을 받게 되는 시기이다.
다시 말해서 진흥왕대의 야심적인 영토 팽창은 눈부신 성공을 거둬 서기 560년대에는 그때까지 신라력사상 최대의 판도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중고시대가 끝날 때까지 약 1세기 동안 신라는 실지회복을 꿈꾸는 여-제 양국으로부터 끊임없는 침입을 받게 되어 일종의 국가적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특히 선덕녀왕 (632-647) 말경에는 신라의 국가적 존립마저 위태로운 형편이 되었다.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과 백제의 의자왕은 서로 연합하여 신라의 국경 지대까지 쳐들어 왔던 것이다. 고구려 군대의 끈질긴 공격을 받아 한강 상류의 신라군 요새는 함락 직전에 놓여 있었으며, 백제 군대는 험난하기 짝이 없는 지리산을 넘어 협천에 있던 신라의 서부 방면군 사령부인 대야성을 함락시켰다. 이로써 신라의 서부 국경선은 왕경인 경주에서 가장 가까운 낙동강 동쪽의 경산 방면까지 후퇴하기 위하여 거꾸로 일대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태종무열왕대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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