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자펜빌에서 바르트는 제 1차 세계대전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1914년 빌헬름 2세와 그 측근들이 내세운 전쟁정책에 93명의 지성인들이 찬성을 ...
본문/내용
자펜빌에서 바르트는 제 1차 세계대전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1914년 빌헬름 2세와 그 측근들이 내세운 전쟁정책에 93명의 지성인들이 찬성을 표명하였을때 그가 평소에 존경하던 스승들과 동료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제 더이상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어떠한 미래도 없으며 그들의 윤리와 교의학, 성서해석, 역사학 등을 따를 수 없다고 판단한 바르트는 인간의 선과 능력을 말하는 19세기 신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출발을 해야 했다. 19세기 자유주의적 강단신학은 정신과 역사의 진실에 대한 낙관주의적 신앙과 속에서 신과 세계, 종교와 문화, 종교와 국가, 신적질서와 세상적 질서를 혼합 내지는 자연적 조화를 연결시켰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이 세계대전을 맞이하여 그 한계를 노출하고 만 것이다.
`나는 점점 더 여러 환경에 처함과 아울러 설교를 담당하는 목사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인간의 삶이 처한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성서의 내용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찾게 되었다. 나는 정말 오늘날처럼 삶의 부조리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증거해야 하며, 이와 동시에 이러한 부조리의 수수께끼를 해결해 주는 성서의 메세지를 전달해 주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점점 자신의 직업과 소명에 대한 위기위식에 부딪치면서 그는 새롭게 성서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로마서 연구에서 명확한 해답을 얻으려 했다. 자유주의는 세상에 내재한 하나님을 요청하였다. 바르트는, 여기에 반기를 들고 `타자(他者)` 로서의 하나님을 지적하였다. 19세기의 자유주의 주관주의는 인간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 놓았다. `하나님은 하나님 되게 하고 사람으로 만들지 말라` 그는 문제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본질과 의지와 행위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문제제기의 지평에서 그 문제들을 다루었던 것이다.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은 1919년에 초판이 나오고 1922년에 완전히 개작된 제 2판이 나왔다.
참고문헌
간하배, `현대신학 해설`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4)
윤성범, `칼바르트` (서울: 기독교교서회, 1983)
칼 쿠피쉬. `칼 바르트` 박종화 역 (한국신학연구소, 1977)
코닐리어스 밴틸, `칼 바르트` 이상근 역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85)
Die Kirchliche Dogmatik I, II,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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