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그러므로 창조주와 자연의 관계는 시계를 만든 기술공과 시계와의 관계가 아니라, 포도나무와 농부와의 관계라고 본다. 포도나무는 농부에 의해 양육되지만 농부는 포도나무의 포도열매를 먹으며 새로운 힘을 얻는다. 새로움을 맛보며 새롭게 일한다. 창조주로서 피조물 자연 위에 군주처럼 군림하고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설득하고, 부드럽게 유인하고, 끈질기게 기다린다.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경험을 공유한다. 세계의 실패는 하나님의 실패이다. 이러한 신관은 분명히 전통적인 초월적 유신론의 신관과는 다른 것이지만 보다 성서적 하나님의 이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신자연신학의 견해이다.
둘째,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다시 정립한다. ꡒ정복하고 다스리라ꡓ는 하나님형상론을 ꡒ돌보고 관리하라ꡓ는 청지기 이미지로 바꾸어 이해할 뿐만이 아니라 한발작 더 나아가서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마치 몸이라는 유기체 안에서 중추신경계가 몸의 다른 기관하고 갖는 관계에 비유한다.
자연의 인간화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화가 이러져야 한다. 아니 본래 인간의 철두철미 자연의 소생이었다. 자연이 그의 모태이고, 양육자이고 돌아갈 집이다. 인간의 오장육부를 구성하는 세포의 구성인자들은 자연을 구성하는 구성인자들과 사실적으로 항상 교체되고 있다. 자연의 대지가 인간의 살이고, 강물들은 그의 핏줄과 신경줄이며, 산맥들은 뼈들이고, 호수들은 그의 두뇌와 같다. 인간의 생명이 자연의 무수한 생명의 희생과 생명체들을 밥으로 하여 성장하고 꽃 피어난 것인즉, 그 인간도 뭇 생명체의 희생물이 되어 주고 밥이 되어 주는 상호공능의 상보상생을 실천해야 한다. 성 프란시스와 함께 자연의 생명체를 형제자매처럼 대하여야 하고, 성 베네딕트처럼 자연과 함께 노동을 통해 대화하고 친구가 되고 성스럽게 변화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