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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극은 여성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창극이라고 할 수 있다. 국극이라는 용어는 1950년대적 용어이다. 해방 직후에는 민속악 아악을 통틀어 국악이라고 했듯이 송방송(1984), 『한국음악통사』, 일조각, 516-524면. 국악사와 국악사장이라는 관직명에서 유래된 국악이란 명칭이 1907년에 처음으로 나타났다가 4년만에 사라지고, 해방이 되자 현행 전통음악을 포괄하는 용어로 다시 사용되었다.
창극을 국극으로 호칭하게 되면서, 단체 이름에 대부분 국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전에 창극에 대해 舊劇이나 歌劇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다른 극양식의 충격에 대한 반응이라고 한다면 해방과 더불어 국극으로 개칭한 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애착과 정통성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는 6·25전쟁과 피난 생활, 수복 후의 경제 재건으로 이어지는 변화와 혼돈의 시기였다. 이 시기 연극을 주도한 우익계는 국립극장 개관, 한국연극학회 결성, 신인극작가의 등용 체제 정비 등을 이루면서, 1950년대 후반에야 그 기반을 다지게 된다. 이 시기 들어 국립극장이 설립되고 신협·민예·신청년 등의 극단이 활동했지만 뚜렷한 공연성과를 내지 못했고, 아랑·황금좌 등의 신파극단 역시 가까스로 그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다.
이러한 시기에 여성국극은 수도 서울에서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서까지 공연되면서 관객과의 교감을 형성, 당대의 연극계를 ‘풍미’했다. 여성연극은 소위 정통연극이라 할 극단 신협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신흥 영화와 맞대결을 벌일 정도로 번성했던 바, 1950년대는 여성국극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유민영, 『우리시대 연극운동사』,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0, 27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