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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전쟁’이라는 환경 속에서 인간이, 개체적이든 집단적이든 간에, 과연 어떠한 존재로 변화할 때 더욱 생존에 유리할까? 나는 영화 <라...
본문/내용
그렇다면, ‘전쟁’이라는 환경 속에서 인간이, 개체적이든 집단적이든 간에, 과연 어떠한 존재로 변화할 때 더욱 생존에 유리할까? 나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면서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되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20여분간 계속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재현하는 전투장면은 마치 종군기자의 카메라를 통해 시각화되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자아낸다. 많은 평론가들이 ‘영화 사상 가장 처참하고 잔인한 죽음의 현장’을 묘사했다고 말할 정도로 영화는 극도의 ‘사실주의’를 추구한 듯이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영화의 줄거리는 지극히 ‘비사실적’이다.
세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머니에게 유일하게 남은 한 명의 아들인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의 미군이 독일군 점령 지역으로 파견된다. 정상적인 명령계통으로는 불가능한 작전이 정상적인 계통에 따라 펼쳐집니다. 더구나 그런 비상식적 작전은 성공을 거둔다. 그러므로 적어도 미군에 한해서는 이 영화는 휴머니티가 넘치는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전쟁은 인간의 야수성을 병적으로 폭발시키는 외적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정상적 명령체계는 살상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동료애는 생존을 위해서 그리 현명한 처신이 아니다. 전쟁에 대한 리얼리즘이란 바로 이러한 논리가 실현되는 냉혹성을 얼마나 생동감 있게 묘사하느냐의 문제다. 인류의 산업문명이 전쟁 수행에 직접적으로 동원되었다는 의미에서 최초의 근대적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시각매체는 바로 이러한 리얼리즘의 맹아 역할을 해왔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화’는 리얼리즘의 중심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