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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깔뱅의 빈부관
거의 모든 기독교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깔뱅 역시 물질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보았다. 깔뱅은 주기도문의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구절을 주석하면서 깔뱅은 하나님 앞에서 식물과 같은 일상적인 것을 구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한 에라스무스(Erasmus)의 사상을 공격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성적인 자비는 아주 사소한 일에까지 미치므로 우리의 육신을 돌보는 일을 멸시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과는 달리, 깔뱅은 빈곤이나 불행을 그 개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냉대의 증거로 보지는 않았다. 또한 그는 번영을 어떤 개인의 공로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로 보고 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구원을 위한 선택의 증거로도 역시 보지도 않았다. 사실상 깔뱅은 부의 평등한 분배를 선행으로 보지 않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강조하였다.
`억압의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저주받았거나 버림받은 자들로 생각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대로 매우 잘못된 견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확실하고 일시적인 부의 상태를 하나님의 은혜로 판단하고 부자들에게 갈채를 보내며, 행운이 그들에게 미소 짓는다고 말한다. 한편 그들은 불행하거나 비참한 사람들을 경멸하고 어리석게도 하나님은 저들을 미워하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과오는 이세상 어느 시대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과오이다.
깔뱅주의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선택의 증거를 개인적인 번영에서 찾았다고 주장한 막스 베버의 견해는 올바른 주장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진화론(Social Darvinism),즉 적자생존의 생물학적 원리가 경제 발전에 적용된 것이 비기독교적 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류 사회의 많은 신교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칼빈은 그러한 잘못된 영향이 전능자의 은밀한 섭리에 전적으로 끼어 들지 않기를 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