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파사시대
바벨론 포로동안 파사인의 바벨론 정복으로 인해 유다는 여러 지도자들이 바뀌었다. 팔레스틴으로의 복귀는 고레스와 헙력함으로 가능했고, 세 사람의 지도자가 그 뜻을 불어 넣어 주었다. 세 지도자란 성전을 세운 에스라, 예루살렘의 성을 재건하고 민족의 경제적 및 영적인 생활을 일깨워 준 느혜미야이다.
단지 적은 수의 국민들만이 그들의 조상의 땅으로 돌아와 다시는 죄를 범치 않을 것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배와 십일조를 등한히 하게 되었다. 잡혼의 금지도, 안식일의 신성함도 무시하게 되었다(느13). 말라기 시대에 이르러 성직자들은 부패와 나태함을 인하여 심한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쇠망의 또 다른 부분적 원인은 이스라엘이 혈통적으로 순수성을 잃은 사마리아인들의 성전재건 참여를 거절하므로 심한 적개심을 일으켰고, 요한복음 4장에 언급된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는 분열을 초래했다.
2.알렉산더 시대(332-301 B.C.)
이수스(Issus)와의 전쟁과 다리우스(Darius)를 동쪽으로 몰아낸 후에 알렉산더는 파사인을 다시 한번 전쟁터에서 맞아 싸우기 전에 수리아와 팔레스틴과 애굽을 정복하려고 했다. 지중해 동부지방 여러 나라들은 알렉산더와 그의 업적에 의해 영향받은 바 실로 크다.
전쟁을 좋아하는 아버지 필립의 뒤를 따라 철학자 아리스토틀과 협의하며,알렉산더는 그의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전쟁의 천재가 되었고, 그의 선생 아리스토틀 보다도 어떤 점에서 월등했다. 그의 당시의 전략 목적은 캘커스(Xerxes)의 지도아래 파사가 헬라를 침략한데 대한 보복이었으나 그의 원대한 목적은 동양을 헬라화 하려는 문화적인 것이었다. 전쟁에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그를 수행했다. 헬라 태생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그의 군대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