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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1990년대의 사상적 위기가 더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 아시아에 끼친 영향면에서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앞으로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아시아에 있어서 두 시기는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 시대의 아시아인들도 걸프전과 IMF를 겪었지만, 그것은 과거의 아시아들인이 경험한 대규모의 전쟁과 대공황에 비길 바가 되지 못한다. 그 당시는 아시아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전쟁과 가난에 시달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사상적 측면에서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오늘날 일본을 비롯하여 네 마리의 용으로 불리는 신흥 공업국들과 아세안에 속한 나라들이 어느 정도 경제 발전을 이룩하여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더라도 사상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전 세계를 이끌어가는 서구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사정은 굳이 근자에 세계를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나 제3의 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1930년대 아시아의 사상적 지형도는 어떤 양상을 보였던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항 이래 서구화를 줄기차게 진행해 온 아시아 각국의 개화기를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항한 나라는 미국의 무력에 의해 타율적으로 쇄국 정책을 폐기한 일본이다. 조선은 일본이 당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먼저 개항한 일본에 의해 개항을 강요당했으며, 중국 역시 스스로 단행하지 못한 채 서구 열강의 압력하에 어쩔 수 없이 개항의 길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원치 않은 개항이 이루어졌다든가 서구 또는 같은 아시아 국가에 의해 이루어졌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개항 이후 모든 국가가 서구적 근대, 즉 문명 개화의 노선을 지향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을 거쳐 결국 공산주의를 택한 중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공산주의 역시 서구적 근대 사상의 일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