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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동북부에 위치한 군으로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먼저 백제의 영역이었으나 중원 고구려비의 발견으로 고구려 영토로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진흥왕 때에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553). 이 때 명칭도 완장성에서 국원성(국원성)으로 개칭되었다. 진흥왕 18년에는 당시의 국원성이 전략상의 요지이며 수운이 편리하다고 하여 소경으로 삼고, 이듬해에는 귀족들의 자제 및 6부의 세력 있고 넉넉한 백성들을 국원으로 이주시켰다. 경덕왕 1년(742)에는 중원경으로 개칭하여 통일 신라의 중앙임을 표방하였다.
고려 태조 23년 (940)에는 중원경을 지금의 명칭인 충주로 개칭하고, 고려 12목의 하나로 삼았다. 성종 14년(995)에 중원도를 설치하여 절도사를 두어 창화군(창화군)이라 하고, 문종 10년(1056)에 충주군을 분할하여 익안현(익안현)을 설치하였다. 고종때에는 몽고의 제 5차 침입을 물리친 공으로 국원경으로 승격되었다. 충렬왕 3년(1277) 충주성을 개축할 때 초석에 아름다운 연꽃무늬를 조각한 연유로 예성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조선 태조 1년(1392)에 고려시대의 지명인 예성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목사를 두었으며, 세종 31년(1449) 좌감사(좌감사)를 두고 세종 4년(1458)에는 진관체제에 따라 충주진으로 바꾸었다. 이후 진에서 현으로 현에서 진으로 강등되고 복구되기를 여러 차례 거듭했다. 고종 32년(1895)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청소재지가 되면서 관찰사가 배치되었으나 교통의 불편으로 1908년 도청이 청주로 이전되고 충주는 군청소재지로 되었다. 1931년에는 충주가 읍으로 승격되고, 해방후인 1956년 다시 시로 승격되었다. 이에 충주군이 현재 명칭인 중원군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