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Ⅱ. 신문의 역사
가. 서양의 신문
(1)관보: 세계 최초의 신문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신문지라는 형태를 떠나서 사회적 기능으로 볼 때 기원전 6세기경 로마제국에서 나온 <악타퍼블리카 acta publica>를 말하기도 한다. `악타`류의 신문은 로마 정부의 의결사항이나 동정을 석고판에 새겨서 공고하는 관보의 성격을 말한다.(악타 세나투스, 악타 듀르나 포퓰리 로마니 등)
(2)서한신문: 중세 상업활동이 활발해지면서 11세기마 `서한신문(서한신문)`이 등장하여 상인들끼리 정보를 주고 받음.--노벨레(novelle) 소식 뉴스→일반에게 확대`아비시`, 짜이퉁(zeitung)
(3)필사신문: <아비시>와 같은 서한신문을 필사(필사)해서 대량으로 배포하였다. 대중적인 필사신문은 1536ssu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발행된 <가제트(Gazette)>는 부정기적이며 인쇄되지는 않았지만 근대적인 신문에 가장 가깝다. 여기에는 정치, 스캔들,날씨, 물가시세, 신간서적 등이 실렸다.
(4)인쇄신문: 1438년 독일인 쿠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의 덕분으로 필사신문이 인쇄되어 판매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인쇄신문으 15세기말 독일에서 나온 <플루크블라트>이다. 당시에 독일에서는 이 신문을 `노이에 짜이퉁(neue zeitung)`이라고 불렀다.
16세기에 들어와 정기적인 인쇄신문으로 얇은 책자 모양의 <총서신문>이 발간되기 시작했다. 이후 1609년에는 최초의 주간신문인 <레라치온(Reation)>이 등장했다.
17세기 말인 1660년 독일에서 일간신문으로 <라이프찌거 짜이퉁>이 창간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신문의 형태는 18세기에 등장한다
나. 동양의 신문
기원전 6세기경 중국 한나라 시대에 등장한 <저보(저보)>가 관보의 성격을 띠었다. (`저`라는 연락사무소를 조정에 두고 결정사항 등을 지방의 제후가 받아보았는데, 이 때 저에서 적어보내는 소식지를 `저보`라 하였다.)
다. 한국신문의 역사
참고문헌
김학동, 『한국개화기 시가 연구』,시문학사,1981
정진석, 『한국언론사 연구』, 일조각,1983.
권영민 외, 『개화기 문학의 재인식』,지학사,1987.
정진석, 『한국언론사』,나남,1990.
임 화, 『신문학사』,한길사,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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