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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단금법의 형성
수역이 은납화 이래로 각지역의 각시기에 따라 은납화의 형태가 다르고,
또 은납의 징수 방법이 달랐다. 이렇게 요역이 복접하게 되어가자 가정년간
(1525~1566)에 이르러 또다시 요역제도에 대한 개혁이 단행되어 화중·화남
지역에서 실시되었던 것이 바로 십단금법이다.
이갑제는 어디까지나 십년일차를 원칙으로 하여 왔으나 십년동안에 호수
와 인정의 증감이 생기고 변동사항이 나타날 때 이갑제 자체에는 불평등 현
상이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이갑제 그 자체에 약점이 있는 즉 차역이 너무
번잡하고 많으며, 또 역량이 같지 않고 각갑의 정량 역시 서로 차이가 있다
는 것이다. 따라서 이갑에게 차역을 분배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겠
다. 또한 각갑내의 부역에 대한 우면대상의 호와 비우면호가 있고 우면의 다
소간에도 또한 차이가 있다. 때문에 정량이 많고 우면혜택을 적게 받고 있는
갑은 그만큼 갑내의 각호의 부담은 적은 것이며 정량이 적고 우면혜택이 많
은 갑은 그만큼 부담이 높아졌다. 따라서 각호의 부담은 평균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균수의 은차 역차의 구분은 본
래 빈부의 차이에 따라 부담을 조정하기 위하여 발생되었다고 하겠다. 즉 역
차는비교적 부담이 무거운 것으로 세량이 많은 자가 부담하며 은차일 경우
에는 세량이 적은 자로서 가벼운 수역에 편충되었다 하겠다.
여기에서 분제가 되는 것은 간골호강들이 이서와 서리들과 결탁하여 악폐
를 낳는다는 것이다. 즉 전량이 많은 자들은 바로 대토지소유자들로서 이들
은 주로 관료거인생원들로서 지방향신들이며 이들은 국가의 우면혜택을 받
으면서도 자기들이 중역을 피하고 경역을 맡게 되거나 요역을 기피하는
폐단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