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Ⅱ. 내각권형성의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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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의 변천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내각의 직책이 어떠한 변천과정을 거치게 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명태조가 재상제도인 중서성을 폐지한 이래 호아제는 국가정사의 업무를 보조한다는 고문적 역할로서 사보관을 두었다. 이는 다시 전각대학사로 바뀌게 되는데 영락제에 이르러서는 이를 제도화하여 내각이라는 상설기구를 설치하게 되었다. 영락시 내각이 성립할 당시에 내각의 직책을 보면 「조종파승상, 설각신, 비고문, 시제초이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내각 최초의 임무는 고문적 역할로서 황제의 업무를 도운다는 뜻으로 조칙을 기초하거나, 황제의 자문에 응하는 정도였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영락제는 정사에 있어 스스로 친정을 하였기 때문에 황제가 각신을 모아 의논하고 친히 결단을 내렸으며 또 자신이 스스로 비답을 행하고 남에게 맡기지도 않았다. 한편 영락시기의 내각의 직능에 대하여 「참예기무, 전륜발」했다고 하는 기록도 있다. 즉 여기에서는 황제의 조칙을 기초하고 또 기무에도 관여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기무란 어떤 뜻일까? 앞서 말한바와 같이 내각의 임무가 「비고문」에 있다고 하는 말은 각신을 두어 고문으로서 천자를 보핀한다는 뜻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고문적 역할이 자연적으로 국가기밀에 관여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내각의 임무중에 「참예기무」가 들어가게 된 것은 내각의 임무수행 중에서 황제의 결재업무를 보조하다 보니 국가기무에 참여하게 된다는 결과에서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참예기무」가 곧 정치에 관여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황제의 고문적 역할 그 자체가 정사를 도우는 일이기 때문에 황제를 도와서 정사를 논했다는 것이지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