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자본주의 신학에 더 큰 공헌을 한 것은 칼빈의 개혁신학이다. 칼빈신학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이므로 그것이 강조될수록 각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서있는가에 절실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장로교회도 내가 과연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구원, 고백,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진다. 예정에 의해서 구원받았음을 확인하려고 애를 쓴다. 칼빈주의는 영국, 네덜란드등지에서 많이 일어났는데,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을 섬김 즉, 직업활동에 전력을 다해서 사람을 예정과 부르심의 증거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겨우 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구원이 달린 것으로 생각해서 자기 직업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그 결과의 열매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축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청지기로서의 재원을 잘 관리하도록 하신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을 이세상에서의 쾌락을 위해서 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청교도적 근면성과 금욕주의를 낳아서 자본이 축적이 되어서 현대 서구자본주의 체제가 생겼다. 웨버는 종교개혁자들이 재발견한 바울의 소명사상이 이러한 혁명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 웨버의 사상은 논쟁거리다. 어떤 사람은 루터의 소명사상이 절대적 순종심을 요구하는 독일의 관료정신, 프로이젠의 관료정신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토니는 청교도들의 개인주의, 근검절약이 자본주의 사상의 근거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논지를 떠나서, 직업을 빵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자기의 구원과 직결된 것으로 생각하고 소명이라고 생각하면 직업에 더 의미를 더하게 하고 성실하게 된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직업의식, 직업윤리, 경제 사회적 현실을 일으킬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웨버의 논지는 일리가 있다. 바울의 소명사상은 변화의 힘과 능력이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바울의 소명사상을 올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