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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한 성서주의
초대 교회의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신앙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막 9:1)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교회에 바치고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 나누어 쓰는 사랑의 삶을 살았다.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데, 이 세상에서 재물을 더 모아야 할 이유가 그들에게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세상 나라의 정치권력과 크게 부딪히려고 하지도 않았다. E. C. Gardner, Biblical Faith and Social Ethics, 이희숙 옮김, 성서적 신앙과 사회윤리 (서울: 종로서적, 1995), 377. 가드너는 당시의 크리스천들이 정치력을 가지지 못했고, 로마제국에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작은 무리였다는 사실을 임박한 종말론과 함께 지적하고 있다.
잠시만 참으면 평화의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터인데, 굳이 세상 나라의 정치권력과 부딪혀 복음전파의 긴급한 사명을 상실할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임박한 재림 앞에서 초대 교회의 기독교인들이 어떤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려 했다면, 그 자체가 오히려 우스꽝스러웠을 지도 모른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외면함으로써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했는가를 알고 있었던 그들로서는 세상에 오염되지 않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우선적인 과제로 다가왔을 것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것은 그의 성실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