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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23대 법흥왕 15년(528)년에 창건하여 화엄불국사, 혹은 법류사(法類寺)라 불리어 오다가 제 35대 경덕왕 10년(751) 당시의 재상 김대성에 의해 다시 기공되어 제 6대 혜공왕 10년(774)에 이르기까지 17년간의 오랜 공사 끝에 재창건하여 이후부터 불국사라 불렀다고 전해오는 사찰이다.
완성 당시 80여동의 목조 건물이 형성되어 있는 대가람으로 고승 표훈과 신림을 모셔와 상주케 했으나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불국사는 여러 번 수축되면서도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조선 제 14대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의 병화로 목조 건물 전체가 세워진지 819년만에 불타버렸다. 그후 점차로 재건되기는 했지만 신라때의 찬란한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던 것을 1969년부터 1973년까지 4년에 걸쳐 창건 단시의 건물터를 발굴조사하여 대대적으로 복원하므로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불국사의 불국(佛國)이란 말은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일컫는 말로 모든 것이 완전하게 갖추어 부족한 것이 없어, 괴로워하고 번뇌함이 없는 안락하고 깨끗한 나라가 되고자 하는 바램이 담긴 뜻이다.
불국사는 상당히 높은 지대에 자리잡고 있기에 먼저 그 주변의 넓은 경관이 불국사가 지니는 뛰어난 점이며 신라 사람이 이 터를 잡는데 비범한 안목을 발휘하였다고 할 수 있다. 동으로는 토함산이 병풍같이 둘러 있으며, 사역 바로 뒤로는 깊은 계곡을 이루어 맑은 냇물이 흘러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토함산 중복을 깎아서 수 단(數段)의 광활한 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불국사를 건립하는 데 필수의 여건이었으나. 이를 자세하게 살핀다면 가람의 중심구역이나 그 서쪽의 1단 낮은 대지, 그리고 이 같은 사역을 남단에서 2단 큰 낙차를 그곳에 석단을 쌓고 석교를 가설한 사실 등은 모두 이곳 자연의 지세를 그대로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