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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유물로 본 가야의 국제교류관계
금관가야는 해상을 통한 중국과의 직접교역으로 선진문화를 소화시켜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였으며, 이 문화의 우수성은 고분들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에서도 잘나타나있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양이 풍부하고 중국, 왜, 부여, 고구려 등과 관계도 시사하는 유물들이 있어 당시 국제관계를 구체적으로 구명할 수 있다.
1) 중국과의 교류-초기가야는 한의 군현인 낙랑등과 활발한 교역을 하였는데 삼국지위서 동이전 한조 위략에 보면 염사치관련기사가 있다. 풍부한 철기문화로 우수한 철제품을 이들지역에 공급하는등, 낙랑과의 교역품으로 중국계 유물인 후한경과, 3세기대 화려한 세공기술을 보여주는 희귀자료인 금박구슬장식목걸이 등도 출토되었다.
거울은 본래 종교적 권위를 나타내는 특수한 보기인데 후한대의 거울을 금관가야의 지배층이 사용하다가 무덤의 주인공이 죽으면서 함께 매납한 것으로 가야국왕의 지위를 보증 보장하는 표징의 하나이다.
<사진1> 방격규구사신경
방격규구사신경은 왕권의 위세를 대변하는 것으로 당시 사회의 특수계급을 알려주는 심벌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직경 16.7㎝ 크기의 원형으로 뒷면에 T자, V자 형태의 문양과 청룡, 백호, 주작, 현무등 사신도가 새겨져 있다.
대성동고분군 제2차 발굴 때 4세기 중엽 대형목곽묘인 23호분에서 깨어졌지만 거의 완형의 청동제거울이 출토되었다. 이는 고대사회 왕의 세습적지위를 보증하는 종교적 상징물로서 강력한 정치집단의 존재를 말해주는 것인데, 금관가야의 지배자들이 후한대(AD25~220)에 입수한 것으로 약 200년동안 대를 물려 사용한 후 매납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유사한 거울이 충남 공주 무녕왕릉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청동제거울의 깨진 조각도 다수 나왔는데 여기에 구멍을 뚫어 목걸이용으로 다시 사용할 정도로 당시에는 아주 귀중한 물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