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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의 역사
여성, 미, 화장, 이 세 개의 축은 언제부턴가 시대에 따라 그 짝을 달리하며 교묘하게 엇물려 왔다. 편리하게 서구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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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의 역사
여성, 미, 화장, 이 세 개의 축은 언제부턴가 시대에 따라 그 짝을 달리하며 교묘하게 엇물려 왔다. 편리하게 서구와 비서구 이분법에 따르자면, body decoration과 cosmetic을 분리하여 설명하는데, 여기서는 서구의 코즈메틱의 역사를 살펴보겠다.
푸코의 [성의 역사]에 따르면, 기원전 4세기부터 중세 초까지 화장은 성과 마찬가지로 금기사항이었다. 플라톤은 고르기아스에서 화장은 사람을 기만하고 속이는 것이라 하여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이때의 화장은 코모티끄.) 고대 그리스인들은 코즈메틱과 코모티크를 구별하여 사용했는데, 코즈메틱이란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위생술 같은 것으로 준의료행위이고, 코모티크는 위생 규율을 어기고 육체적인 폐해를 입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화장의 역사는 코모티크와 코즈메틱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코모티크가 코즈메틱이라는 개념으로 숨어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로마시대에는 화장을 조소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로 위의 두 개념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기이다. 기독교의 출현으로 화장은 한 때 철저히 비난받았으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화장에 대한 금기가 효력을 상실한다.
19세기에 화장은 다시 고대 그리스의 관념과 같이 신체의 청결을 유지하는 위생술로서 이해되고, 화장은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푸코가 부르주아와 육체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과 거의 일치한다. 즉 부르주아는 신체를 억압하기는커녕, 노동력을 창출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신체의 욕망을 오히려 부추겼던 것처럼, 화장도 신체의 건강, 이로 인한 노동력의 확보를 보장해 주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 여성성의 재현이라는 우리 시대 화장 담론에 이르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