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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파리 시내의 플랑슈 가에 있는 싸구려 임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본업은 영화 시나리오를 쓰거나 단편 소설을 쓰는 소위작가라는 일이지만 수입은 변변치 않았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파리2대학에 출강하여 에른스트 블로흐의 <역사를 위한 변명>같은 텍스트를 우려먹으며 역사학에 대한 강의를 하는 시간 강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 강사의 얄팍한 강의료 따위론 싸구려 임대 아파트에서 기거하며, 싸구려 포도주밖에는 마시지 못했다. 그럼에도 뮌헨이나 엑상 프로방스 시절에 비하면 부자라고 말할 수 있는 생활이었다. 그때는 학생 신분이라서 먹는 것도 부실했으며, 읽고 싶은 책도 제대로 구입하지 못해 늘 헌책방 신세를 져야만 했다. 대학 시절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라곤 13인치 중고 텔레비전을 내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정도였따. 대학 시절에는 월드컵이나 WBA 타이틀매치 같은 빅게임은 단체로 관람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텔레비전은 정말 맘에 들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장이 서는 파리의 동부 벼룩시장(les puces de montreil)에서 아주 싼 값에 구입한 것인데 리모컨도 달려 있는 최신형이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마인츠 벼룩시장은 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짧게 열리지만 파리의 벼룩시장들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손가락 하나로 텔레비전을 마음대로 켜고 끌 수 있다는 매력 한 가지만으로 화면이 칙칙거려 잘 나오지도 않는 텔레비전조차 썩 괜찮은 물건으로 여겨졌다. 생각해 보라! 잘 구운 바케트 빵을 날선칼로 흠집을 내어 부드러운 크림 버터를 잔뜩 발라 한쪽 손에는 리모컨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빵을 들고 입을 크게 벌려 한 입 싹둑 베어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는 기쁨이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