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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교 비판의 배경과 성격
고려시대는 불교 중심의 사회였지만 국가 통치나 지배계층의 교육에는 유교가 상당히 중시되었다. 이 때문에 관료의 선발은 주로 유교 경전과 문예를 시험하는 과거에 의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유학자 출신 관료들 역시 불교를 공부하고 숭상하였다. 따라서 고려시대는 불교와 유교가 잘 조화된 사회를 형성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고려초기 통치이념을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던 최승로는 “불도를 행하는 것은 수신의 근본이고, 유교를 행하는 것은 치국의 근원이 된다”고 하였고, 고려후기의 대표적 유학자였던 이제현(1287-1367)도 “불교의 도는 자비와 희사로써 근본을 삼는다. 자비는 인의 가운데 있는 것이고 희사는 의를 행하는 일이다.”고하여 균형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곡(1298-1351)은 불교를 독실히 믿은 유학자로서 “유자는 정을 주로 하니 그것으로 수신하여 제가 치국 평천하에 이른다. 불자는 관을 중시하니 그것으로 수행하여 견성성불에 이른다” 하여 양교의 핵심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고려후기 원의 간섭기에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불교의 교리를 비판하는 유학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불교에 대하여 이단이라는 표현을 한 것은 최해(1287-1340)가 처음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천하 사람들이 부처를 받드는 것이 지나쳐서 배와 수레가 닿는 곳마다 탑과 사당이 서로 바라보게 되었고, 승려들이 모두 권세가들에게 붙어서 부를 오로지하여 백성에게 해독을 끼치고 사대부를 종처럼 보기 때문에 우리 유학자들로부터 용납되지 못한다.”(ꡔ졸고천백ꡕ)고 하였다. 그는 또 불교에서 어버이에 대한 친애를 끊는 것을 인륜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백문보(1303-1374)의 비판을 보면, “근년에 불교의 폐가 더욱 심해졌다. 왕실에 밀착하여 백성을 해치고, 세상을 미혹시키고 재물을 좀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