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결국 글린은 이 통제의 주체와 방향이 무엇이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국내적 통제, 특히 금융기관의 국유화와 민주적 통제가 핵심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국에서 어떤 유의미한 개혁이나 조절을 위해서라도 대안적 자본 통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막연한 지구적 수준의 대안(헌장, 협약이나 제도) 등의 제출로 대체하는 것은 다소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앙은행 강화나 전 산업에 대한 민주적 통제력 확보 등이 훨씬 현실적이고 중요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의 논의에서 ‘재벌해체’나 ‘경제민주화’가 이슈가 되면서도 “금융 및 산업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요구들이 정식화되지 않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공백이다. 예를 들어 금융부문 구조조정의 와중에 외쳐지는 “관치금융 청산”은 주인과 방향을 잃은 구호일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야말로 민주적 대안 계획에 필수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의 계급성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관치금융 청산’은 낙하산 인사 반대, 부패청산 정도의 메시지는 전달할지언정, 금융정책의 주체와 방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할 수 없는 구호이다. 차라리 ‘금융 민주화’라는 소박한 구호가 지금으로서는 더 선명한 방어 구호이자 더 함축적인 공격 구호일 수 있다.
4. 시장의 무장해제
끝으로, 다른 무엇보다도, 크로티에서 리피에츠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종의 (필시 수출 경쟁에 기반한) 경제발전을 통한 민주주의 사수라는 관념을 전제하고 있음이 지적되어야 하겠다. 이들이 투기자본을 기필고 막아내고자 통제적 제도들을 제안하는 것은 그것이 부도덕해서라기 보다는, 민주주의와 완전고용을 가능케할 것으로 기대되는 경제 성장을 침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