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⑴ 검군(劍君)
김 부 식(金富軾) 지음
신 호 열(辛鎬烈) 옮김
신라 검군(劍君)은 대사(大舍) 구문(仇文)의 아들로서 사량궁(沙梁宮) 사인(舍人)이 되었다.
진평왕 건복(建福) 44년 가을 8월에 서리가 내려 모든 곡식이 죽으니, 이듬해 봄·여름에 크게 기근(饑饉)이 들어 백성은 자식을 팔아서 먹는 형편이었다. 이 때문에 궁중의 여러 사인(舍人)이 공모하고 창예창(唱예倉)의 곡식을 훔쳐 나누는데, 검군이 받지 않으니 여러 사인이 말하기를, “뭇 사람이 다 받는데 그대가 유독 받지 않으니 어쩐 까닭이오? 적어서 그런다면 더 주겠소.” 하니, 검군은 웃으며, “나는 근랑(近郞)의 무리로 이름이 적히고 풍월(風月)의 문정(門庭)에서 행실을 닦았소. 진실로 의(義)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비록 천금(千金)의 이익이라도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하오.”라고 하였다. 이 즈음 이찬(伊찬) 대일(大日)의 아들이 화랑이 되어 이름을 근랑(近郞)이라 하였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검군이 외출하여 근랑의 집에 갔는데 사인들이 몰래 의논하기를, “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탄로가 되고 만다.”고 하고는 이내 검군을 불렀다.
검군은 그들이 자기를 죽이려 하는 것을 알고 근랑에게 하직하며, “오늘 이후에는 다시 못 보겠소.” 하였다. 낭(郎)이 그 이유를 물어도 검군이 말하지 아니하므로 재삼 물으니 대강 그 이유를 말하였다. 낭은 “그럼, 왜 상사(上司)에게 말하지 않소?” 하니 검군은, “자기의 죽음을 두려워하여 뭇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받게 하는 것은 인정상 차마 못할 일이오.” 하였다. 낭이, “그렇다면 어찌 달아나지 않소?” 하니, 검군은, “저쪽이 굽고 나는 곧은데 도리어 달아난다면 장부가 아니지 않소?” 하고 이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