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퇴계는 많은 한시를 남기고 있으나 그것의 대부분이 자연(산수)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근대 이전에는 인간생활 중에 차지하는 자연의 비중이 컸던 것에도 기인하지만, 퇴계가 도회지에서 성장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산야체질의 사람]이라고 말한 것 처럼 무엇보다도 산야를 좋아했던 것에 기인하고 있다. 특히, 50세를 기하여 향리로 물러나서, 산중에 한서암을 짓고 부터는 매일 매일 자연을 즐기며 그 가운데에서 학문에 종사했다.
퇴계의 학문과 산야생활(산거)과의 본질적인 관계를 지난 번의 발표 졸고 [이퇴계에 있어서의 산림생활의 의미]
에서는 산야에서의 청빈한 삶이 성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불가결하다는 점에서 살폈으나([무론고궁시, 야성해숙석, 구위도부동, 천언난부석] 화도집이거운이수로부터), 이번에는 좀 더 넓게 자연(산거)과 학문의 관계를 고찰하려 한다.
Ⅰ. 산야 그 자체를 즐긴다.
퇴계가 어린 시절부터 산야와 친숙하게 지내 온 점은 나중에도 다루겠지만, 퇴계거로 물러나서는 거의 매일처럼 근처를 산책하였던 것 같다.
우선 사계절절의 자연의 정취가 그를 밖으로 불러낸다.
[산새가 짝을 찾아 우는 봄, 많은 나무들이 녹색 짙게 번무하는 여름, 바람과 서리가 혹심한 가을, 눈과 달이 추위 속에 얼어 빛나는 겨울, 자연은 사계마다 아름답게 모습을 바꿔 그 정취를 다할 길이 없다. 그래서 대한·대서·대풍·대우의 날을 빼고는 매일 외출한다]([약부산조앵명, 시물창무, 풍상각려, 설월응휘, 사시지경부동이취역무궁. 자비대한대서대풍대우, 무시무일이부출.]도산잡영병기)
나가는 장소는 그날에 따라서 다르다.-308-
[헌에 서서 연못을 보기도 하고, 단에 올라 사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밭에 나가 약초를 심기도 하고, 수풀을 헤매어 향초를 채취하고, 혹은 돌에 걸터앉아 샘물과 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