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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월 5일 내무아문은 명령을 발표해 청과의 종속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을 공식 선언했다. 즉 조선은 자주독립국이었는데 청의 간섭을 받아 나라의 권위가 손상 당했지만 고종이 청에게 추종하던 관습을 제거해서 자주독립의 기초를 확립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명령문에서 중요한 것은 “국시”를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리조실록』392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91), 4-5쪽.
국시는 다름 아닌 청과의 관계를 끊고 독립을 유지하는 것인데 이를 어긴다면 반역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당시 정치엘리트 중에서는 청을 “적국”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2월 2일 김우용이 올린 상소에는 청을 “적국”으로 표현하고 방어를 잘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변경의 수비를 강화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종은 내각에서 논의해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 위의 책, 14-16쪽.
고종은 1895년 1월 7일 홍범 14조 유영익은 홍범 14조가 이노우에(정상)공사와 유길준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반론을 제기했다. 첫째 이노우에의 ‘20개조 내정개혁안’의 내용이 ‘홍범’과 다르며, 둘째 ‘홍범’이 발표되었을 당시 유길준이 박영효의 하위직에 있었다는 점, 셋째 박영효가 1888년 <건백서>에서 개혁서고를 권고한 사실을 들며 박영효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유영익, “갑오·을미년간(1894-1895) 박영효의 개혁활동”, 「국사관논총」제36호, 22-23쪽.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모리야마 시게노리의 지적이다. 모리야마는 박영효를 등용한 것은 고종이 일본의 간섭을 완화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즉 이노우에의 강한 개입과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선택한 차선책이었다는 것이다. 모리야마 시게노리, 앞의 책, 54-55쪽. 반면 이노우에는 자신이 박영효가 고종과 민비로부터 신뢰를 얻도록 노력했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앞의 책,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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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주한일본공사관기록 1』(서울: 국사편찬위원회,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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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쿠라 군노스케 著, 한상일 譯, “朝鮮時事”,『서울에 남겨둔 꿈』(서울: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3).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리조실록』391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91).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리조실록』392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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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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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조선의 위기(1894-1895)”『한국 근대정치사의 쟁점』(서울: 집문당, 1995).
외국문헌
George Alexander Lensen, Balance of Intrigue: International Rivalry in Korea & Manchuria, 1884-1899 VolumeⅡ (Tallahassee: University Presses of Florida,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