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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선거에 대한 평가
이 논문의 초점에서 조금 벗어나긴 하지만 강·전 두 사람간의 논쟁이 5·10선거로부터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선거결과는 총 198명중 무소속 85명, 독촉 55명, 한민당 29명, 대동청년단 12명, 민족청년단 6명, 대한노총 1명 등이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논란이 발생하는 것은 의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무소속의 성향 때문이다. 당시 무소속 출마자(전체의 44%) 및 당선자(전체의 42.5%)가 많았던 것은 정당정치가 정착되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공천탈락이나 한민당에 대한 국민들의 나쁜 이미지를 고려(한민당계열)했다든지 單選不參이라는 당명을 어기고 출마(한독당이나 중간파계열)하기 위한 탓도 있었다. 이 때 두 이유중 어느 쪽의 비중을 더 크게 보느냐에 따라 선거결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구체적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필자가 밝혀두고 싶은 것은 이 선거를 평가함에 있어 우선 각정파의 의석수를 集計하는 문제와 그들간의 승패를 판정하는 문제를 나누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으며, 그 경우 集計나 승패 판정의 時點을 언제로 잡는가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선거 당시부터 組閣이 이루어지기 이전까지의 시점 - 이승만과 한민당이 서로 갈라서기 이전 - 과 組閣을 통해 이승만과 한민당이 갈라서고 또 소장파가 의정활동을 통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후의 시점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集計와 판정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소속의 주류를 극우성향으로 파악하여 선거 전체를 극우분단세력의 압도적 진출로 평가하는 강교수의 주장(1993, 1-6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