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도덕적 요인
만일 루터가 속죄권판매를 정당시한 텟젤과의 대결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늦어졌을런지 모를 일이다. 교회가 신령한 축복을 돈받고 파는 장사를 하면서도 그것을 합리화 시키려 할때 루터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그외에도 성직매매가 성행 했다.그리고 신부의 문란한 생활과 사회의 지탄을 받는 생활을 했다.
이러한 도덕적 타락은 일부 주교들이 교회개혁을 교황바울 3세에게 정식으로 건의하기에 이르기까지 했다.
2. 지적인 요인
르네상스는 유럽의 지적인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고대 문학에로의 복귀,개인주의적 각성,지리상의 발견에따라 동서문화의 교류,봉건제도의 붕괴에 뒤따른 상업인구의 격증,스콜라 철학의 퇴조와 함께 득세한 옥감주의의 득세,이 모든 것들이 중세의 사상적 기초를 흔들었다.
북유럽에서는 인문주의가 대학가를 휩쓸었다.르네상스에 뒤따른 새로운 학문열은 교부신학과 성서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 연구를 불지르고 종교개혁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여 주었다. 중세의 긴 지적인 통제는 성서적 인문주의의 세찬 도전을 받기에 이르렀다.
3.사회적 요인
십자군이후 봉건 사회가 점차 무너지면서 상업의 발달로 농업경제가 상업경제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사회의 구조에 변화가 생겨졌다. 국가주의의 등장으로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는 교회가 국가의 지배아래 들어오게 되고 교황청의 바벨론 포로로 인한 교황 위신의 실추는 교회개혁을 부채질 했다.교회가 부과하는 세금과 교황청의 사치는 백성들의 원망을 사게 했고 루터가 개혁의 봉화를 들자 독일의 농민들은 일제히 봉기 했다.
십자군 운동의 결과로 동방의 사치품이 수입되고 서방사회는 사치풍조에 휩쓸리게 되었고 사제주의의 횡포로 하나님꼐 직접적인 교제가 단절된 무리들은 영적인 해갈을 위하여 현실도피에 신비주의에 휩싸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