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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기의 한국미술
개항과 함께 물밀 듯이 밀려온 신문화와 함께 서양인들이 직접 조선으로 들어와 서구식 그림을 그린다거나 혹은 조선에 근대식 미술학교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가운데 일본을 통한 서구미술의 유입이 확대되면서 미술계의 재편은 거부할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이 독자적으로 근대국가를 형성하려던 힘든 시도들이 제국주의에 의해 좌절되고, 을사보호조약과 한일합방으로 민족적 주체성을 상실함으로써 우리 나라 미술은 식민통치에 의한 일본화풍 및 서구미술의 이식이란 질곡 아래 놓이게 된다. 그럼으로써 근대적 민족미술의 정립이란 과제가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항 문인화가들과 장승업 화파 등에 의해 이루어진 개화기 복고양식이 전통회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가운데 개량적, 절충적 화풍이 범람하던 구한말에 활동한 작가중 양반 출신인 채용신은 인물초상화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조석진과 함께 태조 어진을 모사하기도 했으며, 역대 임금들의 어진은 물론 많은 초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1911년에 발족한 서화미술회 강습소에서 조석진과 안중식의 지도 아래 김은호, 이용우, 이상범, 노수현 등이 배출되었으며, 고종의 신교육 의지의 하나로 1907년 개교한 공업전습소에 안중식이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변관식은 도기과 학생으로 재학하기도 했다. 이 시기 직후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로 도화서의 폐지와 새로운 미술교육제도의 도입으로 주문생산자의 요구에 따른 제작방식으로부터 작가 개인의 개성이나 독창성을 중시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고희동, 김관호, 나혜석 등이 일본에서 서구미술을 배우고 돌아와 활동하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동경미술학교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