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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침략 이후 조선의 각 개항장에 진출한 일본인 상업자본가는 소작제 농장경영을 통한 고율의 토지수익률을 확인하고, 미곡반출로 상업이윤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차츰 자기자본의 투자대상으로서 토지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일본인 상업자본가의 토지매수는 초기에는 비옥한 삼남지방의 평야지대에 집중되었으나, 토지확보경쟁이 가열되면서 그 범위는 점차 서남해안의 도서지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 이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인 『近代朝鮮における植民地地主制と農民運動』(信山社, 1996년, 9월)의 하의도 관련 부분을 수정, 가필한 것이다.
군산지역에 있어서의 일본인 지주의 토지집적과정의 특질에 대해서는 졸고,「日本人地主の土地集積過程と群山農事組合」『一橋論叢』제116권 제2호(一橋學會, 1996년 8월)를 참조.
. 이에 대해 조선농민은 ‘토지조사사업’ 이전의 사적 토지소유권의 확대·강화를 근거로 ‘토지소유권 확인소송’이나 ‘부당이익 반환소송’을 제기하는 등 일본인 지주의 비합법적인 토지매수에 맞서 갖가지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조선통치의 사회적·경제적 기반으로서 식민지 지주제의 확립을 옹호한 식민지 권력은 ‘토지가옥증명규칙’(1906년)과 ‘토지가옥소유권증명규칙’(1908年)을 공포하는 등 일련의 토지법제 개정을 통해 일본인 지주의 토지매수를 합법화하고, 최종적으로는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여 토지소유권을 법률적으로 확정지었다.
이러한 일본인 지주의 조선 진출과정과 이에 저항한 조선 농민운동의 상호관계에 대한 종래의 연구는, ‘토지수탈과 조선농민의 저항’이라는 단순한 도식 속에서 토지수탈로 상징되는 침략성만을 강조하거나 예를 들면 君島和彦「日露戰爭下朝鮮における土地略奪計劃とその反對鬪爭」『朝鮮歷史論集』下, 1979년 3월.
, 혹은 제국주의적 사관에 의거하여 조선을 피동적인 위치에서 파악하는데 그치는 등 단면적·피상적으로 파악하는데 그쳤다 대표적으로는 淺田喬二『日本帝國主義と舊植民地地主制』お茶の水書房, 196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