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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대국가의 왕권을 중시한 거대 분묘가 특징이며, 고구려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석상과 토상이 기본형이며, 백제는 석실 토분 적석 목각분 석실상 적석상이 그 유적으로 많이 남아 있고 신라는 석강묘, 적석목각분이 있는데 기본형으로 단독묘이며 밀폐되어 추장을 위하여 황골식을 썻??고구려나 백제와는 그 형식을 달리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인도에서 불교와 더불어 화장제도가 출연하였으며 왕릉이외는 큰 봉토분의 축조가 거의 중지 되었다.
(고려시대)
왕과 귀족은 석실묘를 썻??상류층 계급과 승려들은 주로 화장하였며 일반서민은 석강묘 혹은 토황묘로써 오늘날의 민간묘 처럼 지하에 광분을 파고 목관을 사용하였으며 봉분을 작게한 것이 보통이다.
(조선시대)
배불승유 정책으로 화장제도가 후퇴하고 풍수지리 설에 의한 명당선택 족분제도가 성행하였다.
(일제시대)
1912년 6월 조선총독부령 제 123호로 “묘지, 화장장 및 이장취제규칙이 재정되어 당시 무분별하게 이장하는 관습의 제지를 위하여 강력한 제재를 시도하였으며 망우리 미아리 홍은동 등지에 최초로 공동묘지와 화장장이 설치 되었다.
(해방후)
조상을 숭배하는 정신과 일제탄압에 대한 심리적 반발에 의한 이장이 성행이 되어 오늘날의 무허가 분묘가 대폭 증대되었으며 6.25 사변으로 더욱 많은 수의 불법묘지의 발생을 야기 시켰다.
참고문헌
* 충청남도 - 묘지 관행 개선방향 연구 1983. 12
* 김 복 식 - 한국묘지에 관한 지리학적 연구 경희대학원 지리학과 논문
* 김 종 대 - 우리나라 묘지제도와 운영상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1984. 6 한양대 행정대학원 논문
* 최 창 식 - 풍수·미신인가 경험과학인가? 1985. 8
* 조 종 식 - 한국 묘지에 관한 법적 연구 198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