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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의 역사는 한마디로 ‘격변의 세월’을 견디며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다. 구한말,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 속에서 첫발을 내디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신문 한성순보를 비롯해서 한성주보, 독립신문, 제국신문 등은 그 존립 자체가 고단한 싸움이었다. 1920년에 이르러서야 일본이 통치체제를 철권통치에서 문화정치로 전환하면서 3개의 조선인 신문이 공식적으로 허가되었는데, 대정실업친목회의 조선일보, 김성수의 동아일보, 민원식의 시사신문 등이 그것이다. 동아일보를 제외한 조선일보, 시사신문 등은 그 시작부터 친일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동아일보 역시 해를 거듭할수록 사회의 분위기에 동화되어 갔다. 또한 일본은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고 조선인을 동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경성방속국’을 세워 현실적으로 모든 언론을 통제하였다.
일본 패망후, 남한에 주둔한 미군은 조건부의 언론자유를 공표하였다. 미군의 통치에 반대하지 않는 한 언론(신문발행)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역시 얼핏 생각하면 관대한 처사인 듯 보이나, 바꿔 말하면 미군이 내건 조건자체가 언론통제인 것이다. 미군은 또한 재빨리 경성방송국을 군정청 산하로 영입하여, 일종의 국영방송으로서 경성방송국을 군정의 홍보매체로 이용하였다. 미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미군정에 협조적인 보수우익신문을 육성하는 한편 자주독립국가를 지향하는 진보언론을 탄압하는 정책을 펼쳐, 결국 3년동안의 미군정 시대를 거치면서 해방직후 우세하던 진보언론은 설자리를 잃게 되었고, 방송에는 미국식의 상업방송 포맷이 도입된다.
자유당정권 시기에는 보수신문 일색에서 여당지와 야당지가 뚜렷하게 대별되었는데, 특히 야당지들은 정부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조절해 나가다가 자유당 정권의 실정이 거듭되고 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