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3. 사회운동과 학생운동
제주도의 학생운동은 일제하와 56년 도제폐지반대운동 등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4.19 때는 학생들이 주도가 되어 운동이 발생했다. 제주대생과 고교생이 중심이 되어 부정선거규탄, 합동위령제, 반혁명세력규탄, 도지사사퇴 등의 활동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5.16 이후 학생운동은 잠잠해졌다가 65년 한일협정반대운동에서 다시 활발해졌다. 제주대생과 고교생이 4월부터 7월까지 반대운동을 크게 전개했으나 막상 협정이 조인되자 큰 시위는 사라졌다. 이후로는 전국적 쟁점이 있을 때만 간헐적으로 학생들의 움직임이 나타났을 뿐이다. 87년 이전에는 소규모 대학생 서클을 중심으로 운동이 맥을 이어왔을 뿐 실질적인 운동은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87년 4월 제주대학교 총학생회는 그동안 금기시되던 4.3을 민중항쟁으로 규정하고 추모제를 개최하였다. 이어 학생회 간부들이 연행되었다. 총학생회 후보자는 4.3 진상규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연행되었다. 이에 따라 연행학생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와 점거가 잇따랐다. 뒤이은 직선제 개헌요구의 6월 항쟁은 대학생의 대규모 가두시위로 전개되었다. 6월 항쟁 이후 학생운동은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내용은 크게 전국적 학생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것과 제주도 지역문제를 쟁점으로 한 것 두 가지로 구분된다.
운동의 명맥만 유지해 오던 학생운동은 87년 이후 몇 년 동안 사회운동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사회운동의 선도적 역할과 각종 주민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에는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사회운동의 활동가로 전환한 점 외에는 영향이 거의 없다. 오히려 사회운동이 학생운동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개발특별법반대, 총선시민연대 활동 등은 좋은 예이다. 활동가의 충원도 80년대에 학생운동을 했던 자들이 주를 이룬다. 90년대 이후 후속 세대 활동가의 배출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