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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홀리나기(Laszlo Moholy-Nagy), 리씨츠키(El Lissitzky),
슐렘머(Oskar Schlemmer), 아키펭코(Alex...
본문/내용
모홀리나기(Laszlo Moholy-Nagy), 리씨츠키(El Lissitzky),
슐렘머(Oskar Schlemmer), 아키펭코(Alexander Archipenko)
1923년 헝가리 태생의 라즐로 모홀리 나기의 바우하우스의 영입 (그는 사직한 이텐의 후임이었다) 은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 이념의 새로운 전환점을 예시하는 것이었다. 데스틸 그룹의 테오 반 되스부르그가 바이마르에 조직한 다다와 구성주의 회담에 1922년 가담했던 모홀리 나기는 타틀린과 리씨츠키가 이끄는 구성주의의 열렬한 멤버로서 예술의 주관주의적인 정의들을 부정하며 예술가의 개성과 미술작품의 유일성의 개념을 혐오했다. 사람들보다는 기계들 사이에서 더 편안함을느꼈던 모홀리 나기는 기존의 바우하우스 교수들과는 전혀 다른 교수법을 기용했다. 그는 생도들에게기법과 재료들을 합리적이고 실용성있게 쓸 것을 강조했고 이젤 그림이나 조각품 대신 새로운 테크닉과 매체로 눈을 돌려 시각과 마음을 개방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그의 (구성주의와 프로레타리아)라는 수필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 시대의 실재는 테크놀로지다. : 기계의 발명, 구성과 관리다.기계의 사용자가 되는 것은 이 시대의 정신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기계는 과거의 초월적인 정신 대체했다....... 기계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도 사용할수 있다.... 테크놀로지에는 전통도 없고 계급의식도 없다. 모든 사람은 기계의 주인이 아니면 노예가 될 수 있다. 모홀리 나기의 임용은 바우하우스가 어떠한 유형의 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그로피우스의 생각에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입증해 주는 예증이었다. 그로피우스는 그 변화를 1923년 바우하우스 전시 당시 그가 한 `미술과 테크놀로지 - 새로운 통합`이라는 타이틀의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