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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주의 시대】 15세기에 들어서면서 피렌체를 중심으로 인문주의자들의 활동이 일제히 전개되었다. 피렌체공화국의 서기장관(書記長官) C.살루타티는 키케로의 서간(書簡)을 발견하여 고전기(古典期) 라틴어의 수사법(修辭法)을 처음으로 공문서에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소위 ꡐ시민적 인문주의(civic humanism)ꡑ의 확립에 크게 공헌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시민의 자유와 그것을 보호하는 공화정(共和政)을 중요시하였다. 이것은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었는데, 공화정은 로마의 귀중한 유산이며 그것을 보존하는 일은 피렌체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로마공화정시대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이 가장 크게 열린 시대였으나, 카이사르를 비롯한 독재자들이 국민의 자유를 빼앗아 버렸으므로 피렌체의 이상은 로마공화정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당시 피렌체는 밀라노를 중심으로 북이탈리아를 지배한 비스콘티가(家)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을 받았으며, 살루타티는 적(敵) 비스콘티를 카이사르에 비유하여 독재자로 규정하고 이로부터의 자유수호를 국민에게 호소하였다. 이와 같은 시민적 인문주의는 역시 서기장관으로 봉직한 살루타티의 후계자 L.브루니 때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였다. 그는 저서 《피렌체국민사》에서 피렌체의 자유의 역사는 에트루리아 사람들이 자유도시를 세우기 이전부터 이미 투스카니(Tuscany)의 토양에 깊숙이 뿌리박혔다고 주장하고, 평등은 정의의 균등한 기회에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밀라노 쪽의 인문주의자들은 로마공화정 말기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이를 수습한 것은 카이사르라고 찬미하고 비스콘티를 카이사르에 비유함으로써 그들의 치정(治政)을 합리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