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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잃은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으므로 순명이라 하겠으나, 우리로서는 그이의 때이른 운명이 애석하지 않을 수 없고, 이제 『혼불』은 그 미완의 완결이라는 역설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96년 12월, 전10권으로 『혼불』이 발간되었을 때, 우리 문단은 그 완간을 기대하며 상당히 들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완결되기 이전의 『혼불』 논의는 모두 잠정성을 면하기 어려운 탓이다. 평론가 김헌선이 기왕의 논의가 <찬미>와 <폄하>로 양극화되고 있음에 상당한 우려를 표명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헌선, <《魂불》, 우주적 상상력의 총화>(《문학사상》97년 12월호) 참조.<《혼불》자체가 이론의 원천>이라는 김헌선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그의 작품론이 이 이론의 정체를 명료하게 드러내지 못한 점, <작품 자체>를 강조하는 입론이면서도 작품의 특성이 작가의식에서 비롯된다거나 논의 도중에 미리 작가의 <철저한 사상>을 언급한 것은 다소 아쉽다. 사족에 불과하겠지만, 비평적 균형감각으로 보아, 『혼불』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백지연의 <핏줄의 서사, 혼 찾기의 지난함>(《창작과 비평》97년 여름호)이 과연 작품을 <폄하>하는가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
앞으로 보다 정교한 작품론을 통해 가닥을 잡아가겠지만, 여기서는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주요 관심사가 된 작품 전개방식, 다채로운 풍속의 복원과 작중인물, 조탁된 언어 등만 예비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기왕의 논의에서 의문스러운 것은 『혼불』에 따라 붙은 <대하예술소설>이라는 용어에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98년 호암상 심사평에서도 <대하예술소설>이라 지칭되고 있고, 상당수 평문도 『혼불』을 대하소설로 언급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