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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학생들은 일본의 조선지배에 저항하는 한편 ‘충량한 제국신민’을 만들려는 일본의 교육정책에 끊임없는 투쟁을 계속하였다. 학생들은 동맹휴교(이하 ‘맹휴’로 줄임)를 통해 ‘조선인 본위교육’ 및 ‘식민지 노예교육의 철폐’를 주장하였다. 또 공개적 학생단체 이외에 독서회등 각종 비밀결사를 조직해 일본의 교육정책뿐만 아니라 일본의 조선지배를 부정하는 정치적 요구도 내걸었다. 학생운동은 당시 맹렬히 전개되던 민족해방운동의 영향 속에서 사상적·의식적·조직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민족해방운동의 주요한 역량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929~30년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은 이러한 1920년대 학생운동의 연장이자 총결산이었다.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영구히 자신의 식민지로 삼기 위해서 이러한 학생층의 동향에 기민하게 대응하였다. 1920년대 중후반 이후 동맹휴교가 빈발하고 그 성격이 변화하자, 조선총독부는 개별학교의 맹휴에 직접 개입하여 맹휴 참가 학생들을 학교로부터 배제시켜 나갔다. 민족적 차별을 하는 교원의 배척 등 맹휴 학생들의 요구조건은 학생들의 통제에 유리하게끔 수용하였다. 그 대신에 학교규율을 강조하고 학생들의 일상을 통제하였다. 민족해방의 이론으로서 공산주의 사상이 학생들에게 수용되자 학교 내외에서 사상의 방어벽을 설치하기에 급급하였다. 학생층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던 각종 비밀결사는 공산주의운동으로 취급하여, 학생운동의 성장과 독자성을 부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