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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생운동 지도부와 학생운동론
3·1운동 이후 1920년대초 새로이 전개된 ‘문화운동’의 분위기하에서 학생들도 나름의 조직을 갖고 이 ‘문화운동’의 대열에 참여하고자 하였다. 1920년 5월 조직된 ‘朝鮮學生大會’가 바로 그것이었다. 조선학생대회는 서울시내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고 전국 각 지방출신의 재경학생 8백여명이 참여하여 조직한 것으로, ①조선학생의 친목과 단결을 도모함, ②조선물산의 장려, ③지방열 타파 등을 내걸고 있었다. 이는 이 단체가 과거의 지방단위 학우회 및 친목회의 분산성을 극복하고 학생층의 구심점을 형성하기 위해 조직된 것으로서, 물산장려운동을 핵심으로 하는 ‘문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부르조아민족주의계열의 성향을 띠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1921년 7월 보성전문학교와 중앙학교를 비롯한 당시 서울의 7개교 교장회의는 중등학생의 탈퇴를 결의, 전문학교 이상의 학생들만 학생대회에 참여토록 허용함으로써 이후 이 단체는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해버리게 되었다.
이에 1922년말부터 전문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학생단체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어 1923년 2월 ‘조선학생회’가 새로이 창립되었다. 조선학생회는 “① 조선학생의 단결을 도모하고 학생문제의 해결을 기함, ② 학생 상호간의 선도와 친목을 기함”을 헌장으로 내걸고 있었는데, 이는 이 단체의 성격도 역시 ‘조선학생대회’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편 1924년 9월 조선학생회와 그 성격이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는 ‘조선학생총연합회’가 일부 전문학교 학생들에 의해 조직되었다가 분파주의적…
이에 1922년말부터 전문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학생단체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어 1923년 2월 ‘조선학생회’가 새로이 창립되었다. 조선학생회는 “① 조선학생의 단결을 도모하고 학생문제의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