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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사회주의사회의 기반을 어느 정도 구축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판단한 북한의 지도층은 1972년 12월에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하고 북한이 사회주의국가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이와 동시에 북한당국은 종전까지 신앙의 자유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되는 데 그쳤던 `반종교선전의 자유`를 `신앙의 자유`와 구분하여 명시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가 반종교선전을 종전보다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이 시기에는 반종교선전이 종전과는 달리 행정적 제재를 동반하는 빈도가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에 계몽과 설득의 방식이 선호되는 듯하며, 이를 반영하여 이때의 반종교선전은 주로 영화·연극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같이 반종교선전의 파고가 상당히 줄어든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인들과의 통일전선적 협조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북한당국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는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는 듯 하다. 즉 한편으로는 기독교가 미제국주의의 사상적 침략도구로 이용되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이 숭미사대주의에 빠져 있다는 주장을 내세워 기독교 비판을 반종교선전의 초점으로 계속부각시키고 있었으나,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 기독교인들의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기독교인과의 통일전선적 협조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같은 모순된 태도속에서 기독교는 1980년대 중반까지 약 40년동안 독특한 사회주의사회 안에서 존재하면서 북한 사회와 상호작용해 왔다. 이 기간은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사회주의사회에 적응해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북한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적대적인 사회분위기에 적응하고 생존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몇가지 독특한 종교적-사회적 존재양식을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