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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보다 구체적으로는 1970년대에 정부가 거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리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70년대초 다나까 수상의 공공지출확대는 석유파동이후 심각한 재정문제를 야기시켰으며, 이에 따라 자민당은 재무성으로 하여금 균형예산기조를 포기하도록 유도하였다. 한편 경제조직연합으로 대표되는 일본대기업은 정부지출의 확대에 따른 법인세의 상승에 도 불구하고 정부는 재정적자에 대해 책임을 지지않는 점에 대하여 반감을 표시하였다. 재무성도 이에 동의하여 지출제한을 위한 행정개혁프로그램을 실행할 것을 원하였다.
셋째, 여당인 자민당은 그들의 정치적 기반을 재편하기 위한 전\햑의 일환으로 행정개혁을 단행하였다. 농촌지역 지지율의 하락과 도시화의 진행으로 자민당 지도자들은 도시중산계층의 지지를 얻고 경제성장추세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자유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농촌지역 지지율의 하락에 대한 위험은 준비위원회와 같은 독립위원회의 행정개혁에 대한 외부의 압력을 창출함으로써 어느정도 완화시킬 수 있었다.
준비위원회의 개혁드라이브의 주요한 대상은 정부 비효율의 표상과도 같았던 일본국립철도였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개혁의 시기와 성격은 두 선거와 야스히로 나카소네라는 인물과 관련이 있다. 1979년 선거의 자민당의 부진은 소비세신설의 공약에 대한 반감이라는 분석이 있었고, 80년 선거 후 스즈키 수상의 취임에 따른 라이벌인 나카소네의 행정개혁관리기구로의 좌천은 나카소네로 하여금 열정을 가지고 행정개혁에 매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뒤이어 나카소네에게 뒤지지않기위해 스즈끼 자신도 개혁이 강력한 지지자가 되었으며, 1982년 선거후 나카소네가 집권하였을 때 그는 가장 강력한 개혁의 지지자가 되었다.
준비위원회는 작은 정부가 최선의 정부라는 새로운 정부관을 제시하였는데, 관료 특히 재무성의 협조없이는 효율적인 개혁이 불가함을 깨닫고, 결국 관료제 개혁의 집행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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