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그런데 풀러는 그 목적을 외면적 목적과 내면적 목적으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의 자연법은 실체적인 자연법과 절차적인 자연법의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전자는 법이 지향하여야 하는 목적을 말합니다. 풀러는 어떤 특정의 목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 목적의 체계를 말합니다. 풀러는 그것을 “공동의 필요(common need)”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공동의 필요는 인간의 본성과 관계하는 것이지만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적 연구에 항상 개방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어떤 절대적인 자연법의 법전(an eternal, unchanging code of nature)은 부정되는 것입니다. 다만 그러한 가변적이고 항상 유동적인 사태 속에서 최소한의 자연법적 내용이 있는데, 이는 바로 사람들 사이의 “대화”의 요청과 그 조건의 확보입니다. 여기서의 대화는 가치·자질·의미의 교환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의사소통의 요청이 최소한의 자연법이 될 수 있는 것은 의사소통을 부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의 목적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법으로부터 우리는 “서로의 차이와 장벽을 넘어서 서로를 인간적으로 대우하라”는 근본적인 명령을 도출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풀러의 논법은 오늘날 독일에서 일어나는 선험화용론적인 철학의 논법과 거의 같습니다. 아펠로 대표되는 선험화용론자들은 진리와 가치의 궁극적 정초를 어떤 외적인 존재나 초월적인 명령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고 의사소통공동체라는 인간의 조건 속에서 그 의사소통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전제 속에서 구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요청과 상호존중의 가치요청을 부정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전제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며, 결국 진리와 가치는 화용론상 선험적으로 정초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