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한국전쟁 이후(특히 스탈린 사망을 계기로) 전세계적 수준에서는 미소간에 긴장이 완화되었으나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공세로 오히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지역적 집단방위기구 창설을 서둘렀다. 그러나 영국 및 영연방국가들의 반대와 일본의 소극적 자세로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실현(주로 미국과 동맹국간의 쌍무조약형태)되는데 그쳤다. 그러자 미국은 한국, 대만과 같은 냉전의 전초국가들의 군사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 국가들의 군사력을 일국 차원이 아닌 극동 전체의 세력균형의 일부로 재규정하면서 이들에게 자국의 경제력을 훨씬 초과하는 군사력을 보유하도록 했다. 물론 이렇게 된 배경에는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이나 장개석의 본토수복론에 따른 군비확대 노선이 있었으며, 이 점은 기존연구에서 누누이 지적된 바 있다. 그러나 그 외에 미국측 요인, 즉 새로운 지역적 위협으로서 중국의 대두와 일본의 재군비 부진 등의 상황전개에 위기감을 느낀 미군부의 압력도 있었는데, 기존연구에서는 이 점이 간과되었다. 따라서 저자는 주한미군의 잔류, 한국군의 강화 등이 진전되는 배경에는 종래의 연구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이승만의 저항에 더하여 미국 군부 내에서 roll-back론이 대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누락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Ⅲ. 이승만 수정주의에 대한 수정: 북진통일과 반일노선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정치적 상징 면에서 이승만 시대를 특징지우는 것은 북진통일과 반일노선이다. 이에 대한 종래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대비되었다. 이 정책들이 식민지의 깊은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를 건설하고 국민들을 결집·동원하여 전쟁이란 국난을 극복하는데 효과/효율적이었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그것을 모두 대중을 통제·억압하는 수단 내지는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한 정치적 상징조작 정도로 여기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