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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국가의 (안정화)요건을 갖춘다는 면에서 장면정부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하는 군부는 좋은 대비를 보여주었다. 장면정부는 근대국가의 이러한 세 가지 기능적 요건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 정부가 붕괴된 직접적 요인은 정부가 군부통제, 즉 물리력의 배타적 확보에 실패한 탓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질서유지의 실패와 이데올로기적 포용성의 부족, 그리고 경제적 성과의 부재라는 요인도 있었다. 한국현대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세력이 활성화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장면정부는 ‘사회의 시대’였다. 그러나 장면정부에게는 이렇게 활성화된 사회부문을 적절하게 제어하면서 그 에너지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몰고 갈 능력이 부족했다. 김일영, “정계의 영원한 초대받은 손님: 장면론,” ꡔ황해문화ꡕ, 1995년 여름, pp.270-277.
그런 점에서 이 시기는 ‘사회가 국가를 포위한 시대’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 같다.
1961년 5월 16일 군부가 권력을 잡으면서 이 나라에는 ‘국가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박정희를 위시한 군부세력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함으로써 처음부터 물리력은 어느 정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상(馬上)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거기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는 법. ꡔ漢書ꡕ 卷43, “陸賈列傳,”
강제수단의 장악은 권력창출과 유지의 요건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데올로기적 포섭과 물질적 재원에 뒷받침되지 않는 강제력은 곧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군부는 경제적 성과를 추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식은 국가주도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