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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이 종식되기 전까지의 북한과 일본의 관계는 정부차원의 교섭은 단절된 상태에서 정경분리의 원칙 아래 제한된 범위에서 인적왕래와 무역이 허용된 지극히 비정상적인 관계를 지속해 왔다. 냉전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라는 큰 틀 속에서 진행된 일본의 한반도 정책은 오직 한국만을 상대했고, 북한은 주권 독립국가로 인정치 않았고 수교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러한 비정상적 북일관계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킨 것은 당시 자민당 부총재이면서 실력자였던 가네마루 신(金丸信)의 전격적인 평양방문이었다. 여당인 자민당을 대표한 가네마루와 사회당을 대표한 타나베 마코토(田邊誠)는 1990년 9월 24일부터 28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회담을 가지고, 일본의 자민당, 사회당, 그리고 북한의 노동당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이 3당 선언에서 일본은 “36년간 북한인민에게 가한 불행과 재난, 전후 45년간 북한인민이 받은 손실”에 대하여 충분히 사죄하고 보상할 것을 약속하고,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국교수립을 위한 정부간 교섭을 개시한다는 것을 합의했다. 3당 선언을 계기로 북한과 일본은 본격적인 회담을 시작했다. 그러나 회담은 결코 순탄치 못했고, 그 결정적 원인은 한일회담에서와 같이 ‘과거청산’에 대한 견해 차이였다. 1991년 1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1회 본회의에서 북한은 일본이 “과거를 사죄한 이상 한일합병조약 등 일본이 구조선과 맺은 모든 조약은 불법이고 무효라는 것을 선언”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음에 반하여, 일본은 “3당 선언에 정부는 구속받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과거에 대해서 반성은 하지만, 일본과 북한은 전쟁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배상이나 보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거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