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ꡔ계몽의 변증법ꡕ이나 ꡔ최소한의 도덕ꡕ은 파괴와 몰락의 도도한 흐름에 맞서 쓰러지지 않기 위한 ‘정신’의 위대한 저항을 의미했다면 이렇게 살아남은 ‘정신’은 미국에서 돌아온 뒤인 전후의 독일에서도 그러한 정신을 못마땅해하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감당하면서 대세를 따르기보다 강물을 거슬려 올라가는 비타협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상처받은 주체는 주체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면서 “관리되는 세계에 의해 완전히 주조(鑄造)되지 않은 사람만이 그것에 저항할 수 있다” Th. Adorno, Negative Dialektik, p. 51.
는 주장을 감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물화되지 않은 주체는 ‘관리되는 사회’의 바깥에서 이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제임슨은 상처받은 주체가 가질 수 있는 지적 창조성에 대해 스스로에 대한 변명이 될 수도 있는 부러움을 드러낸다.
다국적자본주의의 발달에 의해 철지난 것이 되어버린 ‘국가자본주의적’ 경제모델로 돌아가 보는 것은 오늘날은 그나마도 불가능한 ‘상처받은 주체’가 가지고 있던 척도를 잘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척도의 ‘기록장치’ 속에는 공간의 제약성, 점점 커가는 배타성, 항상 동일한 것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상황이 가속화되면서 초래된, 가능성이나 창조적 혁신의 제거에 관한 이미지들이 들어있다. 이러한 과정은 아도르노의 서사적·미메시스적 형식 속에 기록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한 때는 번창했던 작은 개인사업들의 광범위한 몰락이 드라마틱한 징후로서 관찰자에게 감지될 수 있었던 과도기에 살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