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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1900년은 중국에게 있어서 새로운 역사 전개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다. 19세기말의 청일전쟁 이후 중국이 분할통치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였으나 1900년의 의화단 전쟁으로 그 위기는 또 다시 절박해졌다. 이 때의 분할통치 위험은 열강간의 이해불일치, 분할통치의 기술적 곤란성 또는 무역이익을 더 중시하는 입장 등이 얽혀 일단 모면했지만, 그 뒤 두고두고 중국에 재앙이 되는 막대한 배상금과, 중국 령토 안의 주병권이 중국의 발전에 장애가 되었고, 분할통치의 위기의식도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이런 위기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향이 제시되었다. 하나는 왕조체제를 유지한 채 정치개혁(입헌)을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할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왕조를 타도해야 한다는 혁명이었다. 러시아가 의화단 전쟁을 빌미로 남부 만주에 주둔시킨 병력의 철수를 주저하는 것을 분할통치의 시작으로 보고 무능한 왕조를 타도해야만 분할통치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널리 보급된 혁명 사상은 1912년 청왕조의 타도라는 성과를 거두어 새로운 공화정부가 들어섰다. 새로 들어선 공화제의 일차적 목표는 서구의 천부인권론에 근거하여 「전국무론남녀, 개위국민」하는 국민국가를 건설하여 부강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 국민국가의 정치체제는 전제 아닌 합의제의 정책 결정 과정에 국민이 제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 공화정부의 지도자가 된 원세개는 합의제 정치 대신 강력한 권력으로 부강을 이루려는 과정에서 공화혁명의 한 목표였던 합의제를 파괴하였다. 공화정의 리념이 파괴되는 것을 본 지식인들 사이에 공화정의 실현·완성을 위해서는 권위에 굴종하지 않는, 공화제에 걸맞는 자유로운 개인이 창출되어 지적혁명·의식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이것이 신문화(사상)운동이었는데, 이 신문화(사상)운동이 역시 공화혁명의 또 다른 목표였던 반제국주의적 자주의식(반일)과 결합하여 전개된 것이 오사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