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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6 세 시대
로코코 말기에 뛰어난 천재성을 보여 준 오노레 프라고나르는 부셰와 샤르댕의 제자로서 여러 소재를 다루며 자유 분방한 열정과 활력을 과시한다. 와토의 그림 세계를 이어 받은 듯한 그의 작품은 여성적이며 향락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한편 로코코 세계와 더불어 성장을 계속하던 중류 이하의 시민의 윤리감은 상류 사회의 도덕적 퇴폐와 공허한 장식 취미에 반발을 보여 제니스 디드로와 같이 시민적 도덕을 대표하는 계몽주의자나 지식인들은 샤르댕이나 쟝 바티스테 그뢰즈의 설화적이고 교훈적인 풍속화를 찬양했다. 그뢰즈의 수법은 통속적이었으나 그 감상적인 면과 이야기는 그 이후의 주정주의적 경향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되기도 했다.
루이 14 세 사후의 왕궁의 파리로의 이전은 장엄한 궁정 취미가 끝남을 의미했다. 격식화되고 어려운 베르사유 양식으로부터 해방됨으로써 가볍고 섬세하며 우미한 취미로의 전환을 보여 주었다. 이것의 결과로 우미한 장식 취미, 지적이고 고상한 양식, 세련된 관능성이 국민 고유의 특질로 표면화되었다. 여기에 합리주의적 정신과 자연과학의 발달로 교회의 권위는 쇠퇴했고 귀족과 시민의 세력이 증대하고 절대 왕권은 후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귀족과 상류 시민의 사교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층이 생기고 이에 따라 귀족주의적이며 고도로 세련된 탐미적 미술이 꽃을 피웠다.
로코코 양식을 최후로 구체제의 문화는 붕괴되고 계몽 사상의 광명이 근대 사회의 시작을 알렸고 그것은 마침내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게 되었다.
18 세기 유럽 스페인
반종교개혁의 저력이 되었던 스페인의 회화 미술은 엘 그레코가 대표적으로 보여주듯이 종교적이었으며 신비주의적 정감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화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중에서 [무원죄의 성모]는 특히 많이 선택된 소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