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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장군은 운남강무당의 제12기 생도로 입학하여 2년 6개월 동안의 군사교육을 이수하고, 1919년 3월 기병과를 수석 졸업함으로써 촉망받는 기병장교가 되었다. 그렇지만 3·1운동 소식이 알려지자 독립운동에 동참하기 위하여 이범석 장군은 한국인 동기생 4명과 함께 사직하고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그 해 7월 상해에 도착한 이범석 장군은 신규식·노백린·이동녕·안창호 등 임정 요인들을 두루 순방하였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만주로 가서 독립군을 양성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할 것을 종용하였다. 이범석 장군 또한 무관학교에서 배운 군사지식을 토대로 독립군을 양성하여 대일 항전을 벌이는 것이 조국 광복을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이범석 장군은 상해를 떠나 만주로 갔고, 그 해 10월부터 이시영의 주선으로 통화현 고산자에 있던 신흥무관학교의 고등군사반 교관으로 취임하여 독립군 장교 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학교 내에 교성대를 편성하여 그 대장이 되었다. 교성대는 이듬해 3·1운동 기념일을 맞이하여 국내로 진공함으로써 재차 만세 시위운동을 불러일으킬 목적아래 조직한 별동대였다. 하지만 그 같은 거사 계획이 실현되지 못하여 실의에 빠져 있던 시기에 북로군정서에서 이범석 장군의 파견을 요청하여 왔다. 이에 이범석 장군은 신흥무관학교를 떠나 1920년 4월 북간도 왕청현 서대파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북로군정서로 갔다. 북로군정서의 군사 교관으로 부임한 이범석 장군은 그 해 5월 사관연성소를 창설한 뒤, 600여명의 생도들을 모집하여 독립군 장교로 교육함으로써 부대의 전투역량을 강화하여 갔다. 다른 한편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철수하는 체코군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여 부대의 무장을 강화하였다. 그리하여 북로군정서군은 강잉한 독립정신으로 뭉치고, 고도의 군사교육에 의한 전투 역량과 최신의 체코제 무기로 무장한 최정예 부대로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