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한마디로 말한다면 `수행자의 證知`가 어떻게 분별을 떠난 現量이 될 수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그 밝힘의 과정에서 불교적 인식론의 특성 뿐만 아니라 그와 연관된 불교적 존재론의 특성까지 드러낼 수 있었다는 것은 이 논문의 성과로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논문의 논의는 주로 다르마끼르티의 저서와 그에 대한 주석서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評者의 管見으로는 이러한 논의가 디그나가(陳那)가 제시한 쁘라마나학파의 기본관점과 다소 차이점이 느껴진다. 그래서 본 논평에서는 논자의 논의를 따라서 논점을 요약하면서 디그나가의 관점과 차이점이 있는 경우나 평자의 관점과 차이점이 있는 경우에 그것을 기술하는 형식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1.
이 논문에서 드러낸 `수행자의 證知`에 대한 인식론적 구조는 삼법인이나 사성제와 같은 대상을 1) 성문지에 의해 포착하고 2) 사량지에 의해 확립한 후에 3) 止와 觀을 통해서 증득한다는 구조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次第(krama)는 다시 加行(prakar a)→邊際(paryanta)→現量(pratyak a)으로 체계를 이룬다.
이 세단계의 인식론적 구조에 대해서 논자는 다르마끼르티의 논의를 따라서 찰라론에 근거한 존재론적 논의를 보여주고 있다. `이 학파에서는 모든 존재하는 것이 찰라이기 때문에, 수행자의 知는 매 순간마다 찰라 소멸한다`고 하며, `수행자의 證知는 수습의 진행에 따라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지만 그 증득은 찰라에 따라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라고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와 달리 결론에서는 `불교 쁘라마나학파의 수행자의 證知도 禪家의 根本宗旨인 敎外別傳, 不立文字 등과 그 의미가 상통함을 알 수 있다`라고 언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쁘라마나학파의 논의와 禪家의 논의가 어떤 측면에서 상통하는지를 밝힐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