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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칙적으로 화두란 해설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김용옥이 <<벽암록>>을 해설한 것에 대해 `경축, 선종사상 최초의 어리석은 바보 출현`이라고 비난할만큼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변상섭의 위 책은 단지 김용옥의 두 가지 책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 책 한권을 과연 `서평`처럼 꾸미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서술구조로는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화두해설행위에 대한 비판만 하더라도 이 책에서 김용옥의 <<벽암록>> 해설만 문제로 삼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일본서적에서는 화두를 공공연히 해설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신규탁, 한형조, 이은윤, 정성본, 김태완 등의 저서에서 화두가 해설되고 있고 목정배교수도 학술발표회 토론석에서 그런 예를 `자연스럽게` 제기한 적이 있는 만큼 화두에 대한 해설은 이미 공개화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변상섭의 관점에서 보기로 한다면, 김용옥 보다도 이은윤의 해설이 字句 하나 하나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더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따라서 변상섭이 화두해설행위에 대해 비판한다면 이러한 흐름 전체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광범위한 사례 수집과 차분한 논리 전개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상섭은 김용옥만을 문제로 삼았기 때문에 변상섭의 문제제기는 한편으로 적절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학계 전체의 토론대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화두를 해설하는 행위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비겁한 양비론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화두를 해설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화두를 해설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도 할 수 없다고 본다. 사실은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상섭은 선어록을 `번역은 해야 하지만 해설 해선 안된다`고 하였는데 `번역`과 `해설`이 딱 부러지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란 점을 간과하고 있다. 분별적인 사고 작용이 없이 번역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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