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한국교회의 개교회주의가 네비우스 선교방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개교회가 교회들의 공동체인 상회의 통제권 밖으로까지 나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는 개교회의 물량적 성공이 가시화된 시점에서 매우 커졌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이다. 다만 초기 선교사들의 교회정책에서 개교회의 자치, 자전, 자립이 동시에 강조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자치나 스스로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은 뒷전에 있었고 개 교회 차원의 물질적 자립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는 것을 지적해 둔다. 초기 선교사 이래의 이 와 같은 교회정책은 개교회 차원의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하여 교회의 양적 성장을 강제하였다. 이것은 목적과 수단의 전치 현상마저도 가능하게 할만큼 강력한 물적 강제였다. 개교회의 재 정적 자립이 교회성장의 목적으로 둔갑할 지경이 된 것이다. 교회재정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 은 교회의 실세로 인정되고, 개교회 상호간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교회의 양적인 성 장은 목회의 성공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신자 빼오기나 다른 개교회들에 대한 은밀한 혹은 공공연한 비난이 나타나는 것은 약과이다. 하느님이 임재하는 신령한 교회임을 드러내기 위하 여 수많은 성도들이 하느님의 위광을 찬양하는 성전을 화려하게 치장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 늘의 일이 아니다. 이른바 교회재정의 자립이라는 선교적 요구로부터 성공한 교회의 물량주의 로 세태가 변화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제까지 개교회주의의 병폐들은 지적될 만큼 지적되었다. 교회재정 운영의 폐쇄성이라든 지, 교회간 에큐메니칼한 사귐과 협력이 매우 적다든지, 개교회와 상회의 유기적 연관이 약화 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