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라서 가인을 살려두시는 하나님의 처사에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첫째, 가인은 그렇게 간단히 죽음으로써 자신이 받아야 할 고통의 형벌로부터 도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죄에 대한 형벌을 인간이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죽음으로써 도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큰 죄를 지은 사람이 그것이 들통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자살하는 모습을 우리는 간간이 신문에서 읽어보았다. 그러나 지금 가인에게 벌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죽음까지도 그분의 손안에 있으며 죽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권능의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살아있음으로 해서 그의 죄에 대한 형벌을 다 받으면서 살도록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의 행동이라기 보다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인 것이다. 가인은 계속해서 살아 있으면서 그가 저지른 패륜적인 죄값을 치르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형에게 억울하게 죽은 아벨은 하나님께 공평하지 못한 대우를 받은 셈이 되기 때문이다. 죽은 것도 서러운데 그를 죽인 형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죽음을 당하지 않는 표까지 하나님께 받아서 버젓이 활보하고 다닌다면 공의는 거기에 없는 것이다.
둘째, 땅에서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수고하고 일해도 그 소산을 얻지 못한다고 되어있는데, 이것과 연결하여 생각해 본다면, 죄로 더러워진 가인을 땅이 받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더러운 죄인이 그 땅에서 죽을 경우에 그 땅도 더러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가인은 그 땅을 떠나야 하는 것이고 어떤 특정한 땅에 속박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가인이 떠돌아다닐 때도 죽지 않도록 표를 주셨기 때문이다. 이 땅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 죽는 것은 상관없다는 것이 아니다. 어느 땅이든지 가인의 더럽혀진 시신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가인은 하나님의 형벌을 받으면서 자신을 깨끗하게 성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