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개별종교의 일차적 목적은 믿음이라는 몸통부분이 아니라 삶의 패턴을 창출하며 구체화시키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경우 예수가 이루려 했던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 하느님이나 예수 자신의 본성에 관심하는 옳은 지식보다 기독교의 정체성을 위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니터에게 있어 종교적 진리는 종교적으로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기질일 뿐이다. 따라서 니터는 종교들간의 공통점은 그들의 교리조직 안에서보다 그들의 구원중심적 출발점 안에 더 많이 구비되어 있다고 한다. 정의가 왜곡되고 희생적 삶을 살고 있는 세계 내 수많은 민중들의 삶의 현장을 직시했던 니터는 사회 실천적 목적과 종교의 목적이 결코 다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론 중심의 대화이론은 그러나 단순히 제종교를 이해하는 수준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들이 각자 자신들의 구원(正行)을 바르게 실천하고 있는지를 상호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그래서 그는 현세계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고 다음 세계 만을 기다리며 요청하는 사람들과를 대화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 이런 류의 종교들은 대화와 관용의 한계를 넘어서 있다고까지 단호히 비판한다. 이 땅의 평화와 정의를 진일보시키는 일, 이것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예수의 비전을 실현하는 일이며, 동시에 그 자체로 다른 종교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니터는 존재론적인 것 대신에 실제적이며 관계적 진리라고 부른다. “신약성서 내의 기독론적 언어와 칭호들은 예수의 인물과 사역에 대한 결정적인 존재론적 진술을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의 비전에 힘과 매력을 느껴서 그와 같은 길을 걷고 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졌으나 신약성서 공동체들이 예수에 대해 무엇인가 참된 것을 말하려 했음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들이 그것의 일차적 의도는 아니었다.